이유가 어찌 되었든 어디가 아프든 일단 아프면 병원으로 가야 한다. 병원으로 갈 여건이 안되면 휴식이라도 취해야 한다. 휴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결국에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해결되리라 믿고 버틸 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닥칠 수 있으니.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청춘은 내일을 준비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버거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만 하는가? 나의 잘못인가? 뭘 그리 잘못한건가? 이런 한탄에 빠질 때 즈음...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왜 당신은 당신의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충격이었다.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난 왜 이제까지 내 인생이 행복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일까? 내가 뭐가 그리 특별하다고... 뜻하는 모든 일이 잘 풀려야 하고, 고통과 불안 따위는 나와 관계가 없다고 믿었던 것일까? 동서고금의 수많은 현자들이 고독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왜 기억하지 못했던 것일까? 행복... 행복... 행복을 추구하는 것의 반증은, 그만큼 그 행복이란 것이 온전히 가지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왜 잊고 있었던 것일까?
행복이란게... 평안이란게... 여유라는게... 아주 가끔씩 운이 좋을 때 찾아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위기는 항상 한꺼번에 닥쳐왔다. 가정에서의 위기, 직장에서의 위기, 관계에서의 위기... 이들을 이유로 한 나 자신의 위기까지. 차례차례 닥쳐와서 차근차근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삶은 내게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매몰차게도 쉴새없이 나를 두들겨댔다.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답답해하고... 절망하고... 지치고... 결국엔 '그냥 다 놓아버리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그나마 나를 버티게 했던 건 가족들이었다. 내가 모든 걸 포기하는 순간 참 많이도 슬퍼하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망연자실할 아내 그리고 아이들... 이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극단적인 선택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억지로 버텨냈다.
지금도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고 있기는 한데...
캄캄한 아득함만이 남은 지금 이 때... 난 오늘 하루를, 내일을, 그 이후를 어찌 살아가야할까? 답이 없다. 보이지가 않는다. 잘 모르겠다.
주어지는 상황은 주어지는 상황일 뿐, 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며,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솔직히...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지만, 다시한번 속는 셈 치고 주문처럼 되뇌어본다. 곧 지나갈 것이다. 곧 지나갈 것이다. 곧 지나갈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관리론의 창시자 데일 카네기(Dale Carneie)는 사람들의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다름 아닌 '공포'라고 말했다.
"공포에 도전하십시오. 처음엔 누구나 실패합니다. 우리는 걸음마조차 제대로 걷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공포를 이겨내고 도전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역이용하게 됩니다. 실패에 숙달된 사람은 숙련자가 되어 성공합니다. 작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십시오. 작은 성공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작은 성공을 경험한 사람은 공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는 것도, 결국 실패와 좌절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공포가 다가올 때, 우매한 자는 그 공포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저않게 되고, 현명한 자는 그 공포를 상대방에게 던져버린다고 했다. 우매한 자가 될지, 현명한 자가 될지, 그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공포가 다가오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지만,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온전히 나의 자유의 영역이다.
잠시 사정이 생겨 4살된 첫째 아이를 부모님 집에 잠시 맡겼습니다. 아빠,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된 우리 첫째 아이가 과연 달라진 환경에서 잘 적응할까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잘 지내주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간만에 주말을 활용하여 첫째 아이를 보기 위해 부모님 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그 사이에 떼가 좀 는 것 같네요. 자기 전 머리를 감기려 했더니 지금 감기 싫다고, 내일 감겠다고 하네요.
울고불고 떼를 씁니다. 욕실, 집안 전체를 넘어서서 아파트 전체가 떠나갈듯 엄청 웁니다. 조금 당황스럽더군요. 평소엔 매일매일 아빠가 머리를 감겨주는 걸 당연한 일과라 생각했던 아이라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녀석 왜 이러는 걸까요? 그리고 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수많은 책들에서 떼를 쓰는 아이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논할 때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1. 허용되는 행동과 허용되지 않는 행동의 구분을 명확히 하라. 2.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지속할 경우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3.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질책이 아닌 적당한 양의 타이름 및 지속적인 무반응이 필요하다. 4. 무반응의 방법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이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5. 아이가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멈추고 반성 및 용서를 구하는 자세를 취할 경우 따뜻하게 감싸안아줘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시도해 보았습니다. 1. 먼저 제때제때에 머리를 감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며, 머리 감기 싫다고 떼를 쓰거나 우는 것은 하면 안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2. 다음으로 부드러운 어조로 제때제때에 머리를 감지 않으면 머리에서 나쁜 냄새도 나고 못된 벌레들이 생겨서 아플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3. 그래도 떼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자 이에 더이상 질책하지도 타이르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스스로 포기하고 머리를 감겠다고 결심할 때까지. 4. 한참을 울더군요. 정말 한참을 울더군요. 아이의 우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꾹 참고 버텼습니다. 지금 버릇을 제대로 고쳐두지 않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이 보시기에 너무 힘드실 것 같기도 하고, 또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문제겠다 싶었거든요. 5. 한참을 울던 아이가 이제 진정이 좀 됐다 봅니다. 한동안 조용히 가만히 있다가 드디어 머리를 감겠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전 정말 고맙다고... 용기를 내어주어서 너무 대견하다고... 머리 다 감고 나면 바나나 우유를 주겠다고... 웃으면서 약속했습니다. 6. 눈에 비눗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조심 머리를 감깁니다. 중간중간 격려,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참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무엇보다 떼쓰는 아이도 힘들어 보이고, 그걸 지켜보는 저도 힘들었고. ^^;;
저 말고... 아동심리학 전문가가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것과 관련한 몇가지 준칙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혹여나 저처럼 양육에 관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셔도 좋을 듯 하네요. ^^
3. 택시 운전사는 현장에서의 사고처리를 요구하며 응급차의 이동을 저지, 그 와중에 "정말 환자 이송 중인 거 맞냐?", "응급구조사도 없이 운행해도 되냐?", "환자는 다른 응급차에 태우고 이 응급차 운전한 당신은 사고처리하고 가라.",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질께." 이 따위 망발 시전
G7 확대 시도에 따른 한국의 참여에 대해 언론을 통해서는 공개적인, 정부 차원에서는 암묵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며, WTO 사무총장 선임과 관련 한국의 유명희 본부장의 출마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대일본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탄산칼륨에 대해 실제적으로 반덤핑 과세를 부과하면서 경제적으로도 강력히 견제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에도 줄곧 그래왔습니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선임 때에도 회원국 전체 중 유일하게 일본만이 찬성표가 아닌 기권표를 던졌고, 그 밖에도 위안부 합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 간 관련 문제가 다 해결되었으니 경제적으로 도의적으로도 배상할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하기도 했구요.
독도 문제...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여하튼 셀 수도 없군요.
참 맘에 안 드는 녀석들입니다.
공산·사회주의 체제에 대응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로서 한미일이 제대로 뭉쳐 화약고와 같은 동북아 안보 정세를 안정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태도의 반복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입니다.
아래는 한국에 입점한 일본 기업의 리스트입니다.
기업 명칭 상 누가 봐도 일본 기업이 명확한 경우는 제외했구요, “이게 일본 기업이었어?” 라고 생각될 수 있는 기업들만 모아 보았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 맥주의 경우 한국 국민들의 대폭적인 불매운동 참여로 시중에서 찾아보기는 사실상 어려워졌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논객 중의 한명인 다케다 쓰네야쓰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 맥주를 사랑한다.”
“한국에서 일본 맥주를 빼 버리면 한국인들은 크게 당황해 할 것이다.”
“일본 맥주 불매 운동이 성공할 리가 없다.”
우리 한국이 제대로 한 방 먹인거죠.
아래의 리스트를 잘 한 번 확인하시고, 이왕이면 리스트 상의 기업이 아닌 한국의 기업에서 제조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너무너무 맘에 안 드는 일본의 오만방자함에 한번 더 한 방 먹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